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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과 손흥민. 추억의 에인트호벤에서 토트넘까지.

웨일그라피이제언 2018. 3. 6. 01:00


내 고등학교 시절 우리 반 유니폼은 에인트호번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수능을 준비하며 지쳐가던 친구들이 어느 날 시체처럼 학교를 와 나에게 얘기했다. 축구봤냐고, 박지성 봤냐고.

그 당시 스포츠에 관심 1도 없던 나는 무슨 얘긴질 몰랐다. 그리고 그 날 어떤 역사가 쓰였는지. 

AC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전. 박지성이 쏘아 올린 빅클럽 이적행의 불씨를. 그 날 이후 우리 반 유니폼은 에인트호벤이 되었고, 공 좀 찬다는 녀석들은 모두 등 뒤에 J.S PARK를 새기고 다녔다.

옆 반과의 축구경기에서는 박지성이 20명이 뛰는 웃지 못할 광경도 있었다. 남은 2명은 이운재 아니면 김병지였다. 아직 박지성이라는 축구선수에 대해 잘 모르던 나는, 대학에 가서야 이 여드름투성이 선수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피파온라인이었다.


갓 대학에 입학했을 무렵. 내가 피시방을 가던 이유 2가지.

바로 스페셜포스와 피파온라인이었다. 처음으로 온라인 매치를 가지는 축구게임에 나는 열광했고, 인천유나이티드를 시작으로 레벨을 올리며 모나코로 넘어가 박주영을 데리고 빅클럽으로 옮겼다.

월드투어를 통해 내 손가락에 좌절했고, 친구의 도움으로 연패를 끊기도 했다. 그렇게 게임을 하며 축구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게임으로 시작된 관심은 자연스레 실제 축구로 이어졌고, 

내가 움직이던 선수들이 실제로 움직이는 현지 축구 중계는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해주었다. 대망의 2006년 월드컵. 16강에 진출하진 못했지만, 프랑스전에서 동점 골을 넣은 박지성은 대단히 큰 여운을 주었고,

실제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라고 칭하겠다. 맨유의 경기를 보며 곧잘 뛰어다니는 이 한국인 선수는 절대 외국인 선수에게 밀리지 않았다. 토고전의 아데바요르와 이천수, 안정환의 동점골과 역전골은, 내가 본 경기중

스페인전 다음으로 재밌는 경기였고, 아데바요르란 선수 때문에 아스날을 알게 되었다. 아스날을 알게 되고 벵거감독을 알게 되면서 아스날의 축구철학에 매료되어, 한동안 내 피파온라인은 아스날이었다. 그리고 맨유와 AC밀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난 카카를 알게 되었고 게임을 할 때 내가 고르던 팀은 아스날아니면 AC밀란이었다.


군대에서 접했던 K리그.


피파온라인2가 나올 때쯤 난 군대를 가게 되었고, 한 달에 한 번 있던 문화생활을 통해 난 K리그를 접하게 되었다. 게임을 통한 축구입문자라, 게임상 엘리트로 나오는 외국인 선수들에 대해서는 줄줄 알면서 국내 리그의 선수들은 몰랐다. 

K리그에는 단 1도 관심이 없던 나여서 간만의 외출에 설레던 내 마음은 축구경기직관이라는 단어에 급격히 식었다. 별 기대 없이 2시간만 앉아있다 와야지 생각하며 갔던 사직 아시아드. 하지만 내 생각과는 너무 달랐다. 실제로 보는 K리그는 티비로 보던 지루한 그 경기가 아니었다.

현장감이 느껴져서인지, 아니면 비가 오는 그 와중에서 열심히 목소리를 내던 20여 명의 서포터즈때문인지, 괜스레 나까지 고조되어 결국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도화성 선수의 이름을 소리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묵묵히 뛰던 그 선수에게 2006년의 박지성을 보았고, 그렇게 전역할 때까지 축구경기 관람은 내 차지였다.

물론 다른 문화생활은 후임들에게 양보했다. 사실 선임들도 축구에 관심이 없었기에, 축구경기직관은 곧잘 내 차지가 되곤 했다. 영내 체육대회를 치르기 위해 유니폼을 맞출 때에도, 생활반장의 베컴사랑으로 인한 LA갤럭시와 부생활반장의 첼시사이에서 당당히 부산아이파크를 요구했다 기합받았다. 그리고 유일한 왼발잡이였기에, 체육대회 내내 수비만 하는 불상사는 피했다.


AC밀란의 세대교체. 


2009년도 전역 후 그 누구보다 축구에 빠지게 되어, 늘 해외축구를 찾아봤고, 세리에 경기를 인터넷으로 찾아보며 지냈다. 왠지 모르게 AC밀란이라는 팀에 빠져들었고, 호나우두, 베컴, 호나우딩요, 호빙요, 카사노등 당대 유명스타들도 잠깐씩 몸을 담았다. 기존의 세드로프, 피를로, 가투소 그리고 암브로시니와 플라미니는 늘 나의 게임상 베스트였고,

카카때문에 좋아한 AC밀란이지만, 카카는 없었다. 인자기와 네스타를 좋아했고, 잠브로타와 디다는 방에 포스터까지 걸려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로쏘네리 사랑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영원한 태양은 없다고 하던가. AC밀란의 점점 실망스러운 행보는 축구에 대한 나의 관심마저 앗아갔다. 부활한 유벤투스의 막강함 때문인지, 세리에 경기 자체가 재미가 없었고, 프리미어리그로 눈을 돌려보았지만, 박지성의 기량저하는 안타까움만 자아냈다. 

즐라탄으로도 막지 못한 AC밀란의 몰락과 위태로울 만큼 위태로웠던 박지성의 무릎은 축구에 대한 나의 관심을 확 꺼트렸다. 기성용, 이청용, 구자철은 박지성 이상의 임팩트가 없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함부르크의 신성 손흥민, 레버쿠젠과 토트넘까지.


꺼져가던 관심을 살린 건 얼마 전 보았던 토트넘 하이라이트였다. 거기서 난 업그레이드된 손흥민을 보았다. 단순한 공격수치가 아닌, 박지성이 골을 잡았을 때 느꼈던 기대감을 손흥민에게도 느꼈다. 함부르크의 신성이라 불리던 시절부터 레버쿠젠까지 분데스리가에서 촉망받던 유망주란 걸 알았지만, 한 번도 경기를 보지 못하다가, 얼마 전 본 토트넘 하이라이트는 나에게 다시금 축구에 관한 관심을 불려 일으켰다.

이동국이 미들즈브러나 설기현, 이천수 그리고 안정환까지. 수준급 공격수는 있었지만, 세계의 벽을 허물진 못했다. 박지성은 윙으로, 기성용은 중미로, 하지만 손흥민은 다르다. 언제나 우리나라에 붙던 공격수 부재라는 단어를 잊게 해줄 선수일 수도 있다.

국대만 오면 힘을 못 쓰지만, 내가 기대하는 건 그 이상이다. 박지성을 보고자란 아이들이 손흥민 같은 선수가 되었듯, 그리고 차붐이 시작하고 박지성이 연결한 빅리그 진출이라는 길을 손흥민이 넓히는 만큼, 더 많은 인재가 나올 거라는 기대이다. 늘 답답한 뉴스만 보다 손흥민이 들려주는 골 뉴스는, 그 어느 탄산보다도 상쾌함을 준다.